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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으로 20년 살다 활동가로 일하는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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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1-09 16:26 조회1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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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독한 가난, 그보다 더 지독한 가정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는 딸에게 중학교도 그만두게 하고 공장으로 등을 떠밀었다. 10대 여공은 공장의 남성 동료에게 끌려가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지만, 부모에게 말할 수 없었다. 성폭행을 당한 사실보다 더 무서웠던 건 이걸로 또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할 아버지였다.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 공장을 그만두고 친구 소개로 따라간 술집. 손님들에게 술만 따라주면 된다는 말을 믿고 일을 시작했지만 업주는 몇 달 뒤 화장품값, 미용실비 등의 명목으로 700만원짜리 영수증을 들이밀었다. 당장 갚지 않으면 집에 알리겠다며 성매매 굴레에 처박았다. 그로부터 20년간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기 위해 전국 업소를 떠돌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빚을 갚아주면서 남편이 된 사람은, 그의 과거를 들먹이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길은 늘 낭떠러지였다.

 

글을 쓰며 마주한 불쌍하고 외로운 나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하고 통찰한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내가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성매매로 유입되어야 했을까? 내가 강간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성매매를 해야 했을까? 나는 왜 성매매를 했을까? 내가 잘못한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또한 “맞아도 내 잘못, 강간을 당해도 내 잘못, 남자에게 버려져도 내 잘못, 성매매를 해도 내 잘못”이라며 늘 “잘못했다”는 말만 달고 살던 저자 봄날(필명)이 탈성매매 뒤 여성단체를 찾아가 상담받고 글을 쓰며 자기 삶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책 제목에 대해서, 그래서, 봄날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우연히 길을 하나 건넜을 뿐인데, 거기가 낭떠러지인 줄 몰랐다. 하지만 벼랑 끝에는 추락도 있지만,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올라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올라가는 과정이지만 결국 올라올 수 있었던 건, 그 벼랑 끝에서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살아온 경험을 글로 쓴 계기가 있을까.

성매매 인식을 바꾸고 성매매 여성들을 탈성매매로 유도하기 위해 2013년 7월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업주와 알선업자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내 이야기를 써야 했는데, 나에 대해 쓸 얘기가 없었다. 성매매 이력밖에 없으니. 그때부터 글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렇게 글과 싸우면서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나에 관해 썼던 글이 4년간 쌓였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 겪은 경험과 만나는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책을 내게 됐다. 책이 나오는 전날까지도 과연 출간해야 하나 고민했다.

글 쓰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과정이 되었나.


몰랐던 감정을 알게 되고, 나에 대한 언어를 갖게 되고, 나를 재발견하고, 또한 내 경험이 특수한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임을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할 때 폭행당해도 돈을 떼여도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만 ‘18번’으로 하고 살아야 했다. 나에게 허락된 언어와 감정은 그거밖에 없었다. 억울함을 하소연하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왜 맞을 짓을 했냐”는 말을 들으니 분노를 느끼지 않아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탈성매매 이후 내가 왜 그렇게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글을 쓰면서 나를 이해하게 됐다. 내가 살려고 그들에게 덤비지 않았고 그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가 나를 용서하게 되었다. 업소에서 일하면 늘 외모 지적을 받는다. “오늘 화장이 왜 그러냐” “머리 스타일이 왜 그 모양이냐” “옷이 그것밖에 없냐” 등 끊임없이 지적받는다. 또 구매자들은 돈을 냈다는 이유로 내 위에서 군림하고 나에게 욕하고 나를 혐오한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자기혐오가 심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너무 불쌍하고 힘들고 아프고 괴롭고 외로운 나를 만났다. 누구에게도 허심탄회하게 내 얘기를 할 수 없고, 나를 그리워하는 가족도 없는 나를. 불쌍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너무 싫었던 나 자신을 용서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아팠지만 좋았다. 또한 성매매에는 가정폭력, 성차별, 성폭력, 취업사기 등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녹아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내 경험이 특수한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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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펴낸 작가는 “성매매라는 차가운 겨울을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사회의 품에 돌아왔다”며 자신의 필명을 설명했다. 김아리

부모를 용서하는 대신 인정하기로

과거 자신의 정체성과 지금 정체성은 어떻게 다른가.

20년을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았고, 그것도 어디 가서 말할 수 없는 정체성이었다. 매일매일 죽고 싶었고, 못 죽어서 살았던 삶이다. 꿈이 없으니까 살 수 있었다. 꿈이 생기는 순간 업소를 탈출해야 하는데 탈출할 수 없으니 얼마나 괴로우냐. 그래서 꿈이 없어야 했다. 탈성매매 이후 단 한 번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지금은 내 삶과 경험을 드러내고 보니, 나는 누구보다 반성매매 활동가였다. 보통 사람과 조금 다른 경험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정체성은 성매매, 여성폭력과 싸우는 전사다. 나에게 용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성폭력 관련 법을 개정하는 데 내 사례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사례를 공유할 정도로 전사가 된 거 같다.

인간에 대한 관점이 과거와 달라졌을까.

과거에는 인간이 조금이라도 권력이 있으면 타인을 짓밟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 편견도 심하지만, 나 역시 사회와 세상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을 거다, 그들은 나를 짓밟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자 내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서 큰 힘을 얻었다. 주변에 나를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생각하면서, 나도 이제는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

부모와 화해했나. 화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하게 되었나.

중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공장 일을 하루 빼먹었다고 죽도록 두들겨 패던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겠나. 아버지가 때릴 때 옆에서 방관하고, 성폭행을 당하고 온 딸을 “아픈 데 없으면 됐다”며 산부인과에도 데려가지 않는 어머니를 어떻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겠나. 부모가 행여 사과하더라도, 내 상처가 어떻게 그 사과 한마디로 치유될 수 있겠나. 그냥 그 세대를 산, 잘못이 컸던 부모라고 인정할 뿐이다. 그렇게 인정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부모를 원망하고 그들에게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이제는 잘 사는 내 삶을, 파괴하고 싶지도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

 

성매매 여성 만나며 상담

지금 하는 활동을 얘기해달라.

반성매매 활동가로 살고 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를 상담하고, 성매매 집결지를 방문해 그들을 만나기도 한다. 유관 기관이나 단체들을 만나서 관련 법 개정과 정책 입안 활동도 한다. 성매매 당사자 네트워크인 ‘뭉치’와 연대해 당사자들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지금 활동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그들(성매매 여성들)을 만나는 것이 나를 만나는 거다. 비경험 상담원들과 달리 나는 경험자라서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게 많다. 하지만 경험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가장 서운해하는 대상이 나이기도 하다. 경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계속 훈련 중이다. 그들을 보살핀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보살피는 것이어서 힘이 많이 된다. 그래서 많은 당사자 활동가가 배출됐으면 한다.

반성매매 활동가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도 많은 여성이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성폭력, 성매매로 죽어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가해 남성에게 얼마나 관대한가. 대개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남성과 여성, 모두의 안녕을 위해 성범죄만큼은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선고하는 등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 성매매와 관련해서는 한국형 노르딕(북유럽 국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행 성매매 관련법은 구매자와 성매매 여성을 모두 처벌한다. 성매매 여성은 벌금형에 처하면 그 벌금 때문에 다시 업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스웨덴을 중심으로 잉글랜드, 프랑스 등에서 확산하는 노르딕 모델은 성매매 여성을 비범죄화하고 알선업자와 구매자를 강력히 처벌함으로써 성매매를 확 줄였다. 구매자와 알선업자들에 대한 벌금형으로 성매매 여성의 자활을 돕는 한국형 노르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쉽고 편하게 돈 번다는 세상의 편견

탈성매매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돌아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과 자포자기 같은 심리적 문제인가, 선불금이라는 구조적 문제인가.

선불금과 불안정한 심리, 자원 부족이 걸림돌이다. 특히 자원 문제 때문에 탈성매매 이후 먹고살 수가 없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늘 해왔던 일이니 성매매는 익숙한데, 업소 밖 현실은 적응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곳이 지옥인지도 알고,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뻔히 알면서 재유입된다. 나 역시 다시 돌아갈까 많이 갈등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업소에서 만난 이해관계자로 이뤄진 인간관계밖에 없다. 이 관계를 다 끊어내야 하는데, 그러면 아무 인간관계가 없는 외톨이가 된다. 자기를 학대한 사람들이지만 그게 유일한 관계이기 때문에 청산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재유입됐다는 이유로 그 여성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한다. 안타깝지만 그들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성매매에 대해 ‘돈을 편하고 쉽게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노동’이라는 편견이 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물론 돈을 버는 사람도 소수 있겠지만, 이걸 노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업주와 알선업자뿐이다. 특히 서울 강남 비싼 룸살롱의 경우, 많은 돈을 벌지만 여성들의 사치 성향으로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대형 룸살롱에 있어봤다. 거기서는 구매자 눈에 맞춰 옷을 입고 치장해야 한다. 200만~300만원을 내고 술 마시러 온 구매자들은 명품을 휘두른 여성들을 원한다. 화려하고 비싸게 치장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여성들이 치장에 많은 돈을 쓰는 게, 자기에게 투자하는 게 아니라 성매매를 하기 위한 비용이다. 업주와 알선업자, 구매자들이 강요하는 것이다. 그걸 사치라고 할 순 없다.

최근 성매매 종사 여성 중에 성매매를 합법적인 노동으로 인정해달라는 움직임이 있다.

성매매 합법화 움직임은 그 여성들에게 ‘너는 평생 사회에 나오지 말고 거기서 성매매를 하면서 살라’는 소리다. 성매매 당사자가 그런 목소리를 내는 건, 자기가 학대받은 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아프니까 인정하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는 거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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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을 키우는 것이 취미인 봄날 작가는 “식물로 인해 내 마음이 풍족해진다”며 “식물만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봄날 제공

꿈 생기고 상상하는 삶에 행복

성매매 이력을 밝히고 강연한 적도 있다던데, 힘들지는 않나.

강연에서 커밍아웃하면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처음에는 굉장히 떨렸는데, 지금은 괜찮다. 상대가 못 받아들이면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는 건 당신의 몫이고, 말하는 건 나의 몫이니까.

성매매의 길을 걷는 가장 많은 계기가 무엇인가. 빈곤인가, 가정폭력인가, 성폭력인가.

가정폭력이 가장 큰 계기인 거 같다.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오게 되고 오갈 데가 없으니 성매매 길로 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가족해체, 가정파괴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그 원인은 여성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행복하지 않으면, 가족해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거기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성매매 여성으로 만들어진다.

지금 삶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는 거다. 크게 뭘 하겠다는 목표 같은 건 없고, 하루하루 열심히 잘 사는 거다.

행복의 정의는 무엇인가.

나 자신에게 만족하는 거다.

그 정의에 따르면 행복한가.

그렇다. 나에게 성매매 경험이 20년 있었지만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 경험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글로도 쓰다보니 이렇게 기자와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나. 지금은 아주 많은 꿈을 가지고 많은 상상을 하면서 살고 있다. 다음엔 무얼 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니 굉장히 만족스럽다. 한번은 어떤 분이 남들보다 늦게 학교에 들어가고 남들보다 늦게 공부한 것을 아쉬워하는 걸 보고서 내가 그분에게 말했다. “남들처럼 20대에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뒤늦게라도 인생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훌륭한 거 아닌가. 늦었다는 게 어디 있나? 인생에서 공부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나 역시 나이가 많이 들어서 20대와 함께 공부했는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언제 했느냐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공부를 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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