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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집결지를 바라보는 불편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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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4-03 09:29 조회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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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방 알람이 울려 열어보니 청와대 청원 건이 올라와 있었다. 내용을 읽어 보고 좀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이랬다.

청원자는 S도시에 대규모로 조성된 아파트 입주 예정자라고 밝히고 있었다. 입주할 인근 역 주변에 성매매 집결지가 있는 모양인데, 불법이고 불편하니 이를 폐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청원 카테고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권/성평등이었다.

오고 가며 마주할 성매매 집결지의 풍경이 편치 않을 것이라는 면에서, 청원자의 청원 배경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밝힌 청원 취지는, S역 인근은 시민의 공간이니 여성, 청소년, 시민들에게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부분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청원자가 말하는 여성, 시민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성매매 '여성'은 '여성'도 '시민'도 아니라는 걸까? 그는 부지불식간에 성매매 여성을 여성과 시민이라는 범주에서 배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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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되기를 바라는 심정의 근거를 짐작해본다면 우선 성매매가 싫어서일 것이다. 여성들은 태생적으로 성매매를 좋아할 수 없다. 성매매라는 행위는 단지 여성에 의해서만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명백하다. 유구하게 이어져온 성 구매의 역사, 오직 남성만이 구매자라는 사실. 때문에 여성은 성매매를 대상화할 수 없다. 여성만이 성매매자라는 변하지 않는 위치성은 여성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인 당사자성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직면할 때 여성이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쩌면 나 일 수도 있는 저 위치성은 같은 여성이라는 동성에 기반한 동질감임엔 틀림없지만, 동시에 나는 절대 아니라는 분리감을 작동시킨다. 최하층 계급 여성의 자리에 자신을 선뜻 놓게 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불편한 위치성을 외면하고 싶은 심정은 성매매여성과 여성을 구별 짓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원자의 요청대로 성매매 집결지를 없앤다면, 성매매가 사라지고 동시에 저 수렁에 빠져있다고 설정된 성매매 여성들은 해방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노예성을 자각하고 그 억압과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일전을 불사할 기개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구제로 받게 된 탈노예는 즉각 해방된 노예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식민지를 벗어나고도 얼마나 오랜 시간 그 그늘에 있게 됐던가를 돌이켜 본다면 이해되지 않을 일도 아니다.

개발의 바람이 불고 그 여파로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된 곳도 있다. 그러면 즉각 성매매가 사라졌을까? 그렇지 못했다. 사라지지 않는 성구매자의 욕구는 새로운 경로를 탄생시켰다. 성매매는 개인적 성매매의 형태를 띠고 주거지로 은밀히 스며들었다. 위 청원자가 바라는 대로 성매매집결지가 폐쇄된다 하더라고, 성매매는 이런 변형된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청원자가 바란 것이 다만 성매매 현장의 가시적 소멸만이라면, 즉 내 눈앞에서만 안 보이면 된다는 믿음이었다면, 그 효과는 거두겠지만 말이다.

성매매 집결지를 단순히 폐쇄 해체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살리고 인근 지역 공동체와도 상생하는 재생적 측면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곳에 살던 사람이 선호 받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이나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그저 내치면 된다. 하지만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본다면, 그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공동체의 일원이다 아니다는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그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누가 성매매 여성이 되는가를 말하면 언제나 따라 오는 레토릭이 있다. 자발적으로 몸 판 여자라는 오해가 새긴 오래된 낙인. 자발성의 허위를 언급하려면 집창촌의 유래를 잠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집창촌은 오랜 역사를 갖기 마련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의 유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해방되고 일제가 사라졌으니 유곽도 당연히 사라졌을까. 아니다. 일제가 갔어도 한국 남성 구매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어 한국에 입성한 미군이 그 뒤를 이어 집창촌의 명맥을 더 대규모로 이어갔다. 국가는 성매매를 금지했지만 동시에 미군을 상대한 집창촌은 장려했다. 달러의 화수분이었기 때문이다.

미군 기지 이전으로 이 집창촌도 사라져야 하는 게 마땅했지만 그랬을까. 아니다. 한국 남성이 발길을 대며 구매를 이어나갔다. 성매매 여성들은 한자리에서 국적만 바뀌는 남성을 상대하며 삶을 꾸려갈 수밖에 없었다. 일제에서 미군정에 이르기까지 이곳으로 유입된 여성의 대부분이 미성년으로 전쟁고아나 먹고살길 없는 가난한 여성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집창촌인 줄 모르고 사기나 납치로 끌려왔다는 사실은 자발성의 허위를 깨고 있다.

이렇듯 집창촌은 철저한 위선적 국가제도의 산물이며 가부장이 직조한 남성중심주의의 결과다.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성매매 집결지의 폐쇄만을 논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내가 사는 인근 P시에도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이곳 역시 미군의 대규모 기지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미군이 떠나며 대부분의 성매매 업소는 문을 닫았지만, 이후 한국 남성들을 상대하는 집창촌이 들어섰다. 이곳은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무심한 시민들은 여기에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도 한다.

인근 주민들 특히 여성들은 이 성매매 집결지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마치 외딴 섬처럼 분리되어 있다. 찾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이곳은 실재해도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며, 인근 주민들에겐 부끄러운 공간으로 존재한다. 이곳에 분명 사람이 있지만 아무도 이들의 존재를 알려하지 않는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인간, 이것이 그들의 삶이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고 낙후된 곳이라 재생에 대한 얘기가 솔솔 피어오르지만, 누구도 성매매집결지인 이곳과 함께 재생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럴 수 있기라도 하듯, 금이 딱 그어진 형태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도 넘지 않는 금. 이곳 사람들은 주민들에게서 철저히 소외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성매매 집결지의 재생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란 난망한 일이다. 재생이 이루어진 경우는 대체로 성매매 집결지 인근이 개발되면서 보상을 받고 철거하는 과정이다. 이때 성매매 집결지 업주들은 개발이익을 얻지만, 이곳에 이름 없이 살던 성매매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이 30대 이상의 고령층으로 구성된 가난한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은, 먹고살기 위해 인근 주거지로 스며들어 성매매를 지속하거나, 이보다 더 열악한 성매매 집결지로 떠나가야 한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성매매 근절이 될 수 없다.

성매매 집결지 재생을 성인지 관점에서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곳이 대구 자갈마당이나 전주 선미촌이다. 성인지 관점의 재생에서 무엇보다 우선 고려되어야 하는 대상은 성매매 여성들이다. 오랫동안 한곳에 거의 수용되듯 살았던 여성들이 갑자기 주체적 삶을 꾸리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탈성매매하도록 도우려면, 다각도의 자활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직업훈련 지원뿐 아니라 주거 지원 그리고 자립할 수 있는 정착 지원금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승인하는 일이 절실한데, 이들에게 박탈된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이 곧 재생의 과정이다. 이렇게 성인지적 관점의 재생이 진행됐더라도,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 인권의 측면에서 얼마나 진일보했는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사람은 한 곳에만 서있는 게 아니다. 더욱 거세지는 신자유주의의 파고는 어떤 삶도 한곳에 머무르게 두지 않는다. 어느 날 예기치 않게 밀어닥친 불행과 재난의 쓰나미는 우리를 상상도 해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갈지 모른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의심과 혐오 그리고 배제로는 서로를 구제할 수 없다. 이미 이 코로나 대란이 알람을 울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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