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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그루밍도 성착취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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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4-06 13:57 조회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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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3월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텔레그램 성착취 ‘엔(n)번방 사건’ 피해자 74명 중 16명은 미성년자.”(3월20일 서울지방경찰청 발표)

경찰 발표를 보고 착잡했다. 사건 내용 중 끔찍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피해가 안타까웠지만 그중에서도 10대 아동·청소년 피해자에 대해선 더 큰 걱정이 밀려왔다. 아직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언론 보도는 모두 가해자 검거와 처벌에 초점이 맞춰 있다. 가해자를 모두 찾아 죗값을 물어야 하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모두 공감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이 어떻게 상처를 회복할 수 있을까,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한겨레21>이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를 만난 이유다. 2011년 세워진 십대여성인권센터(이하 센터)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법률 상담부터 회복까지 모든 과정을 지원해왔다. 센터는 2019년 600여 명의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을 도왔다.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어떻게 봤는가.

디지털성범죄의 전형이었다. 금품 등을 미끼로 아동·청소년을 유혹해 사진과 개인정보를 확보한 다음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요구사항 수위를 높여나간다. 우리는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낼 수 있지?’라고 의아해하지만, 아이들은 가족과 친구에게 알려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기에 가해자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준다. 텔레그램 사건의 범인 조주빈(24)이 말했듯 ‘노예’가 되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미성년자에 대한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을 형사범죄로 규정하라고 권고했으나 관련법이 계류 중이다.

온라인 그루밍은 명백한 범죄인데 한국에선 이해가 부족하다. 온라인 그루밍 단계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사진과 정보를 많이 확보할수록 피해자를 장악하기 쉽다. 장악한 뒤에는 성폭력으로 발전하고, 성폭행·성매매 알선 같은 착취로도 이어진다. 이 모든 과정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기 때문에 온라인 그루밍 단계에서 막는 게 중요하다.


사진과 정보를 입수해 협박해도 처벌이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최근에도 한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에게 속옷 차림의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친구들에게 사진을 공개하고,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당해 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사진에 얼굴이 안 나왔고, 협박이 심하지 않으며, 유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협박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온라인 그루밍도 일련의 성착취 과정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다.

범죄를 범죄로 보지 않으니 문제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겠다.

더 큰 문제는 성착취범들이 이런 사실을 잘 안다는 점이다. 한발 더 나아가 범인이 피해자를 성매매에 동원해버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피해자가 더는 ‘피해자’로 인정이 안 된다. 현행법에서 성매매는 매수자와 매매자를 모두 처벌하므로, 강요로 동원됐더라도 미성년자는 소년범으로 분류돼 ‘보호처분’을 받는다. (피해자도) 사실상 처벌받는 셈이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인데 성매매 범죄자로 규정돼 처분 대상이 된다면 피해 사실을 신고할 수 없을 텐데.

그래서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묻기에 앞서, 피해자를 피해자로 규정해야 한다. 이번 텔레그램에서 이뤄진 성범죄를 수사 당국이 찾았다고 해서 범죄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익명성을 더욱 철저하게 보장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계속 나온다. 성착취범들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수사가 어려워질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고는 범죄를 막을 방법이 없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 메신저를 설치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올린 것은 피해자 본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도 일부 가출·비행 청소년의 일탈을 원인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데.

디지털성범죄와 관련해서는 2015년과 2017년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전엔 성범죄 대상이 주로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면,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이 급증한 2015년 이후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학교 안에서도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성착취범을 접촉할 수 있게 됐다. 2017년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공유 채널이 활성화되면서 피해자 폭이 더 넓어졌다. 센터에 왔던 피해 학생 부모 중 의사, 교사, 공무원, 심지어 검사도 있었다. 일부의 문제가 아닌 모든 아동·청소년의 문제로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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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영상매체 닷페이스에 나와 말하는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유튜브 화면 갈무리
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상담에서 듣는 이야기에는 피해자들의 ‘자책’과 ‘포기’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왜 자신이 온라인 그루밍 단계에서 거절하지 못하고 심각한 상황까지 이르렀을까 자책한다. 과거 ‘순수했던’ 자기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더러워졌다고 생각해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넣기도 한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거나 자해하는 경우도 있나.

피해자 대부분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자책이 너무 크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보니 자해를 많이 한다. 정신과 약을 먹는 경우도 많다. 자살 충동이 강한 피해자는 입원하도록 권유한다.

지원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나.

자책과 포기에서 벗어나도록 우선 돕는다. 범죄 피해 사실에 대해 ‘안 겪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므로 흘려보내자’고 다독인다. 성적으로 더러워졌다는 사실에 천착해 모든 걸 잃은 듯이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극복하고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용기를 준다. 이 과정에서 피해 아동·청소년이 주도적으로 결정하도록 유도하는데, 이 방법은 자존감 회복을 돕는다. 무엇보다 법률 지원이 중요하다. 법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해야 피해자가 안심하고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성착취 범죄 피해를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친구들도 있나.

물론이다. 10년 전 14살 때 심각한 성착취를 당해 센터에서 지원을 받았던 친구가 며칠 전 “첫 월급을 받았다. 밥 한끼 사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아직은 수습사원이라 아침에 남들보다 일찍 나가 주변 정리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동료들이 많이 알려주고 도와준다….”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면서 조직에서 예쁨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 거란 예감이 들었다. 피해자마다 조금씩 다른데 피해 정도가 약하고, 나이가 어릴수록 좀 빨리 회복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텔레그램 사건으로 불거지긴 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2014년 하은이 사건, 2015년 관악 모텔 여중생 사건 등 매해 문제는 있었지만 우리가 그 신호에 반응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수사하지 않았고, 범죄를 막을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를 지원할 체계도 없었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한다. 텔레그램 사건으로 여론의 관심이 높아졌는데 반드시 관련 법률을 재정비하고, 피해자에겐 법률·교육·일자리·생활 지원까지 이어지는 ‘통합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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