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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매매 산업의 정치경제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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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9-08 15:52 조회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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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그림

여성이 성매매에 종사하게 되는 원인에 대해서라면 도서관 하나를 짓기에 충분하다. 이 주제는 사회학이나 인류학이 정교한 분석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문학작품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세계 문학의 고전이라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866), 에밀 졸라의 〈나나〉(1880), 톨스토이의 〈부활〉(1899)이 그렇고, 번역본을 찾기보다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쉬운 다니엘 디포의 〈몰 플랜더스〉(1722)가 그렇다. 플랜더스(〈몰 플랜더스〉)와 소냐(〈죄와 벌〉)는 각기 고아라는 불우한 출신 성분과 빈곤 때문에 성매매를 하게 되고(Ⓐ), 첫사랑에 실패한 나나(〈나나〉)와 카츄샤(〈부활〉)는 각기 남자를 향한 복수심과 자학의 심정으로 성매매에 빠져들게 된다(Ⓑ). Ⓐ형이 출신과 환경을 중시하는 자연주의에 바탕이 있다면, Ⓑ형은 심리주의 분석의 대상이다.

성매매 여성은 한국 문학작품의 단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광수의 〈무정〉(1918)에 나오는 박영채는 플랜더스와 소냐를 성매매 현장으로 내몰았던 두 가지 원인이 합쳐져 기생이 되었고,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1973)에 나오는 오경아는 나나와 카츄샤처럼 남자를 잘못 만나 호스티스(접대부)가 된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어느 글에서 1970년대에 유행했던 ‘호스티스 소설’의 여주인공들을 가리켜 “사회적·역사적 이유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된 동정의 대상”이자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남성 새디즘”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존재였다고 평한 뒤, 강석경의 〈밤의 요람〉(민음사, 1983)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교육받은 여인들이고,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창녀들입니다. 그러니까 희생물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당당한 직업’입니다”라고 썼다. 이렇게 해서 문학 속에 나오는 성매매 여성과 그들에 대한 해석은 Ⓐ, Ⓑ형과 전혀 다른 Ⓒ형의 등장을 맞이하게 된다. 자발적인 성매매는 가능한 것인가.

김주희의 〈레이디 크레딧〉(현실문화, 2020)은 신용과 부채라는 문제틀을 동원하여 오늘날 작동되고 있는 성매매 산업의 특징과 구조를 새롭게 구성한다. 매춘 현장에서 성매매 반대운동을 벌여온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대표적 요인으로 빈곤·가출·인신매매·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을 꼽아왔다. 그런데 성매매 알선과 행위를 처벌하고 성매매 방지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성매매특별법이 2004년 제정되면서부터, 여성주의적 시각은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면서 자발적 노동 의지를 강조하는 쪽과 성매매를 폭력으로 정의하면서 성매매 피해 여성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강제 요인을 강조하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그 결과 한쪽은 성매매 인정을, 다른 한쪽은 근절을 해법으로 내놓게 된다.

금융권이라는 새로운 선수의 등장

서로 경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견해는 성매매특별법이 있음에도, 적게는 8조7000억원에서 많게는 3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한국 성매매 산업의 약진을 파악하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레이디 크레딧〉은 여성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자연주의적이고 심리주의적인 설명을 배격하는 것은 물론, 자발적인 듯 보이는 오늘날의 성매매 구조가 숨기고 있는 성의 정치경제를 “자본주의 경제운동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전통적인 성매매 산업은 포주와 성매매 여성의 물리적·경제적 예속 관계로 온전히 설명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의 성매매 근절운동은 포주에 의해 철창과 빚에 이중으로 감금되어 있는 피해 여성을 구제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포주와 성매매 여성의 대면 관계에서 성립하는 전통적인 성매매 산업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종료한 2001년 전후를 기점으로 점차 사라지게 된다. “현재 한국 성매매 산업에서는 내부의 인적 교체를 넘어 질적 단절과 정치경제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성매매 산업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금융권이라는 새로운 선수가 이 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성매매 산업에 금융권이 뛰어들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놓칠 수 없는 거시적 요인으로 자본의 반격을 들 수 있다. 노동자들이 호락호락 착취당하기를 거부하자 축적의 위기에 직면한 자본은 공장에서 노동력 착취 없이 화폐 형태 속에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세계가 맞닥뜨린 금융화다.

“최근 성매매 여성들이 업주로부터 선불금 대신 유흥업소 종사자 자격으로, 혹은 신용을 가진 개인 자격으로 다양한 대출상품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은 탈산업화 이후 개인 부채의 확대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자 한 자본의 방향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들은 미등록 대부업체나 제3금융권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에서 만들어진 (업소 전용) ‘아가씨 대출’ 상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동시에 성매매 업주는 여성들의 차용증 채권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업소 창업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악한 포주와 꾐에 넘어간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분법은 은행이라는 새로운 선수가 등장함으로써 선악의 경계가 흐려졌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명목으로 돈을 빌리게 되는 수가 있는데, 갚아도 갚아도 빚이 줄지 않는 악덕 포주가 아닌 은행과 여성 사이의 정당한 대출·채무 관계는 기이한 도덕의 전도 현상을 가져온다.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성매매 여성은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성실히 자기 일에 매진해야 하는데, 그것은 더 이상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 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용은 재산이다”라는 말이 더 무섭다. 신용을 잃고 나서는 아무도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옛날부터 빚을 얻는 것은 원래 소수의 야심가들의 전유물이었으나, 금융 기법이 고도화된 신용 사회에서는 자신의 신용으로 부채를 운용하는 것도 능력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기이한 가치관의 전도가 일어난다. 많은 이들이 은행의 부채를 얻고도 ‘빚쟁이’라고 주눅이 들기보다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기획하는 개인 사업가’로 자랑스레 여긴다. 하지만 신용 사회가 은폐한 진실은 그것이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슬라보이 지제크가 〈공산당 선언 리부트〉(창비, 2020)에서 잘 요약했듯이 “신용이란 부채를 의미한다”. 김주희의 책 15쪽에 나오는 “페미니스트로서 단일 쟁점 운동은 불가능하다”라는 대목과, 369쪽 위에서 여섯 번째 줄에 갑작스레 튀어나온 “부인”은 이 책을 한층 논쟁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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