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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의 채권자는 '금융'... 한국사회는 성매매를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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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의 채권자는 '금융'... 한국사회는 성매매를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봐"

입력
2020.08.05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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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유흥업소 여성들의 선불금을 담보로?
저축은행 '유흥업소 특화 대출'
"빈곤여성 착취하는 금융 구조"

3일 서강대에서 한국일보를 만난 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3일 서강대에서 한국일보를 만난 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여자 장사는 돈이 된다’는 인식은 근절되지 않고 있죠. 오히려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사회가 인정을 해 온 셈입니다. 그 중심엔 제도권 금융회사가 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주희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성매매가 지속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의 성매매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과 성경제의 자본축적이 이뤄지는 과정을 분석해 왔다. 최근 '레이디 크레딧'이란 제목으로 펴낸 박사논문에서 김 교수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20~70대 여성 15명을 심층 면접해 이들을 거쳐간 돈의 흐름을 짚었다. 여성의 몸이 담보(크레딧)가 됐다는 게 핵심이다.

김 연구교수는 “여성들이 성매매에 뛰어드는 건 빈곤하기 때문인데, 성매매를 하기 위해서 다시 선불금(소위 마이킹)이란 이름의 부채부터 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성매매 장소가 되는 거주지, 의상대여, 화장ㆍ머리, 심지어 결근비까지 ‘돈을 벌기 위해 빚을 지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 한 여성은 연 199.1%의 고리대로 800만원을 대출받았다가 이자가 밀리자 재대출을 반복하며 3년간 5,000만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했다.

외환위기 이후 성매매 여성의 부채 채권자는 과거 포주에서 제도권 금융이 됐다고 김 연구교수는 지적했다. 저축은행들이 고수익을 기대하며 만든 ‘유흥업소 특화 대출’ 상품이 대표적이다. 김 연구교수는 “강남 유흥업소 업주들이 유흥업소 종사자의 선불금 차용증을 ‘담보’ 성격으로 제출하면 저축은행들은 돈을 빌려줬다”고 말했다. ‘성매매로 수익을 낼 여성'이 업주가 받는 대출의 담보가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U신용협동조합은 울산에서 룸살롱 업주 및 여종업원 962명에게 연간 36.5~60%의 고리대로 292억7,200만원을 대출했다.

폭력조직 두목으로 유명한 조양은씨도 바로 이 유흥업소 대출 상품을 이용해 자본금 없이 성매매 업소를 차려 300억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챙겼다. 김 연구교수는 “2011년 제일저축은행 비리사건 재판을 보면 조씨가 허위 차용증으로 돈을 빌렸고, 저축은행은 그 이유로 피해자로 둔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매매 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대출 상품을 만든 저축은행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라며 “한국 제도권 금융회사가 불법인 성매매를 실제로는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역이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김 연구교수가 만난 여성 15명 중 단기간에 돈을 벌어 성매매를 그만 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지방대를 다니던 20대 여성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6개월간 목요일 밤마다 기차를 타고 서울 룸살롱으로 출근해 주말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김 연구교수는 “그는 옷도 대여하지 않고 한 벌만 사서 직접 빨아 입고 미용실도 가지 않았다. 방값을 아끼기 위해 룸살롱에서 잠을 잘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6개월 후 손에 쥔 돈은 고작 600만원. 김 연구교수는 “지방대 나온 여성인 그는 자신이 가진 자원이 젊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금융이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또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없이는 성매매 산업 근절은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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