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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미성년자 성매매' 판결문 219개를 분석했다. 또 피해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아홉 차례에 걸쳐 그 실태를 해부한다. 이 기사는 그 세 번째다.  [편집자말]
이른바 '랜덤채팅'으로 불리는 휴대폰 채팅 어플을 설치하자 즉각 이 같은 메시지가 쏟아졌다. 미성년자 성매매 범죄 등과 관련된 어플 자체 경고문은 무용지물이었다.
 이른바 "랜덤채팅"으로 불리는 휴대폰 채팅 어플을 설치하자 즉각 이 같은 메시지가 쏟아졌다. 미성년자 성매매 범죄 등과 관련된 어플 자체 경고문은 무용지물이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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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여성 A는 지적장애 3급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긴 하지만 말이 어눌해 표현이 서툴다. 집안형편이 좋지 못했고, 학교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와도 사이가 틀어졌다. A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는 휴대폰뿐이었다.

SNS 메신저와 채팅 어플에서 A는 어눌하지 않았다. 그곳에서나마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러다 ○○에 사는 50대 남자를 만났다. A가 아직도 '○○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와 달랐다. 친절했던 남자는 A를 옥죄지 않았다. 재워주고 먹여주며 A의 신뢰를 샀다. "스무살이 되면 결혼하자"는 그의 약속을 A가 철석같이 믿을 정도였다.

믿음의 결과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자는 "우리가 함께 살려면 방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두 달 정도 '막일'을 했던 남자는 A에게 '돈을 벌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채팅 어플로 '성매매 약속'을 잡고 A에게 '일'을 다녀오도록 시켰다.

일주일에 2~3일 정도 하루에 다섯 번씩, 1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방세치고는 많은 돈이 들어왔지만, A는 지금도 그 돈이 "방세로 쓰였다"고 말한다. A의 손에 쥐어진 돈은 없었다.

남자는 A에게 "아버지를 죽여 아버지 돈을 우리가 갖자"는 말도 했다.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남자의 유도에 A는 독약까지 구매했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A에게 "아빠를 경찰에 고소하라"고도 했다. 과거 A가 가출하자 아버지가 한 가학적 행동을 문제 삼자는 것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재판에 넘겨졌고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수사과정에서 남자의 존재도 드러나 A는 구조됐다. 하지만 경찰은 더 수사하지 않았고 남자는 법망을 빠져나갔다. A가 입을 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A는 청소년 쉼터에 와서도 한참을 "○○ 아저씨에게 다시 보내달라"고 말할 정도로 남자에게 심리적 지배를 당한 상황이었다.

지난 12월 만난 A는 "아저씨가 나쁜 말을 할까봐 (그땐 그만하고 싶단 말을 못했다)"라고 속삭이듯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인터뷰에 도움을 준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이후 몇 차례 더 채팅 어플로 친구를 사귀려다가 모텔에 끌려가 도망친 적도 많다"라고 전했다. A는 "친구를 만들고 싶은데 다 이용하려고만 하고, 자기 욕구만 풀려고 하고, 돈 빌려달라고 하고"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하고 대화해도 제가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서 친하게 못 지내요"라고 덧붙였다.

쉼터 관계자는 "자신이 장애가 있어 상대방과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을 '내가 안 좋은 이야기를 해서 문제가 된다는'는 식으로 표현한다"라며 "우울증이 심해 5년이 지난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 요즘도 무슨 이야기만 하면 바로 우는 등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도망치자' 마음을 먹기까지...
  
남자는 차를 빌려 모텔을 전전했다. 시간이 지나 남자는 B에게도 성매매 강요를 이어갔다.
 남자는 차를 빌려 모텔을 전전했다. 시간이 지나 남자는 B에게도 성매매 강요를 이어갔다.
ⓒ 오마이뉴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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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폭력이 동반된 사례도 많지만(관련기사 : 맨발로 미친듯이 택시에 올랐다... 채팅앱 뒤편서 벌어지는 일), 심리적으로 피해자를 지배해 '성매매'란 이름의 성착취를 이어가는 사례도 많다. 피해자 스스로 행동하게끔 하거나, 나중에 강한 자책감에 시달리게 한다는 점에서 더 악랄한 방식이다.

위 사례처럼 그런 피해자가 장애인뿐일까? 그렇지 않다.

17세 여성 B는 집을 나왔다. 부모의 이혼과 병환으로 집엔 자신과 동생 둘 뿐이었다. 그러다 동생과 크게 다툰 후 가출을 결심했다.

청소년 쉼터에 머물던 중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가출한 동생이 "지금 남자친구(성인)와 함께 지내고 있다"며 "언니도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그 남자는 "방도 구해주고 동생과 편하게 살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동생 남자친구니까'라는 생각에 B는 의심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거짓이었다. 남자는 차를 빌려 모텔을 전전했다. 한동안 B는 '돈이 어디서나지'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남자는 함께 다니던 다른 여자 아이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남자는 B에게도 강요를 이어갔다.

남자는 동생과 함께 있을 땐 친절했다. 하지만 동생이 없으면 "우리 돈 없는데 어쩌지? 밥 안 먹을 거야?"라는 말을 자주했다. 급기야 "그럼 네 동생 성매매 시킬까?"라는 말까지 했다. '그래, 동생보단 내가 낫겠지.' B가 더 버틸 수 없게 되자, 남자는 채팅 어플로 하루에 2~3회 '일'을 잡았다.

B는 '내가 도망치면 동생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 그래도 저 사람이 동생에겐 잘 해주니까. 지금 잘 데라도 있고 밥은 먹을 수 있으니까.' B가 스스로를 위로할 때 하는 생각이었다. '도망쳐야지'라는 마음을 먹기까지 그렇게 1년의 시간이 걸렸다.

B가 떠난 후 남자는 동생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그게 '매매'가 아니라 '착취'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동생의 배신감은 더 컸다.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였다.

지난 12월 B를 만났다. B는 힘주어 이야기했다.

"경찰 조사에서 '왜 도망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경찰이 그렇게 물을 줄 몰랐어요. 제가 도망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지 않는 게 아닌데. 또 사람들은 함부로 이야기해요. 쉽게 돈 번다, 발랑 까졌다... 본인이 안 겪어 봐서 잘 모르는 거겠죠?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B는 '간호사'라는 꿈을 꾸고 있다.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니며 이론 수업을 다 들었고, 지금은 실습을 다니고 있다. 쉼터에 머물며 검정고시를 통과한 B는 간호대 진학을 준비 중이다. B는 인터뷰 말미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어른들이 좀 깨끗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미성년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주고 친밀감을 형성한 뒤 성매매를 강요하고 성관계를 가졌다면 그건 성착취,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봐야 한다"라며 "그걸 애정이나 친밀함의 관계로 이해한다면 큰 오류다. 아직 이러한 인식이 너무도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폭행·협박이 동반된 경우와 달리 이른바 '그루밍'에 의한 성착취의 경우 훨씬 더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라며 "하지만 우리 수사기관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관련 판결문 219개를 검토해 피해 사례와 형량을 정리했다(2020년 1월~10월 선고, '대법원 판결문 검색 서비스' 통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중 성매수·강요행위·알선영업행위 등 키워드 검색). 이어지는 <③-2 그게 어떻게 '약속'인가, 판사가 "비열하다" 말한 이유>에는 위 사례들처럼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성착취를 이어간 사례 중 일부가 담겨 있다.

태그:#미성년자, #성매매, #성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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